김세훈의 스포츠IN
'시멘트' 인조잔디, 돈과 선수생명을 바꿔서는 안 된다. [김세훈의 스포츠IN]
인조잔디 흡수성 비교. 왼쪽은 두개는 국내 KS 기준(50%), 오른쪽 두개는 국제축구연맹, 국내프로축구연맹 기준(62~68%). 국제규격이 인조잔디 잔체 길이가 길고 모래와 충진재 등 탄성칩이 넉넉해 깊이가 깊다. 한국건설생활환경시험연구원(KCL) 스포츠환경센터 제공
국내 인조잔디축구장 10곳 중 8곳이 충격흡수성이 국내 기준에 미달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한국체육시설관리협회가 158곳 인조잔디구장을 대상으로 충격흡수성을 조사한 결과, 129곳이 50%를 밑돈 것이다. 충격흡수성 50%는 한국산업표준(KS) 인증 기준이다. 국제축구연맹(FIFA) 기준(60%)보다 낮다. 게다가 국내에서는 정기 점검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 ‘시멘트’ 인조잔디에 대한 관리 주체도, 책임 소재도 없는 꼴이다.
대표적인 인조잔디 성능 인증·공인기관은 한국건설생활환경시험연구원(KCL·원장 윤갑석) 스포츠환경센터다. 프로축구연맹(K리그), 국제테니스연맹, 국제육상경기연맹 공인 검정 및 시험 기관이다. 인조잔디에 대해선 충격흡수성, 수직방향변형, 회전저항, 공구름, 공반발이 주요 검사 항목이다. 충격흡수성은 선수가 점프했다 착지할 때 바닥이 충격을 어느 정도까지 흡수하느냐를 보여준다. 수직방향변형은 착지시 바닥이 얼마나 꺼지는지를 나타낸다. 회전저항은 선수가 방향을 전환할 때 축구화가 어느 정도 돌아가느냐를 알려준다. 공구름이 공이 얼마나 잔디 위를 적당히 구르는지 평가해 잔디 직립성(서 있는 정도)를 알수 있는 지표다. 모든 지표는 천연잔디에 가까울수록 좋다.
FIFA는 인조잔디 내구연한을 8년으로 본다. KCL 충청본부 공양표 본부장은 “FIFA는 2년마다 성능 검사를 실시하고 수리와 보완작업을 거쳐 기준을 충족하면 2년 인증을 추가로 내주는 식으로 관리한다”고 말했다. 우리나라에서는 제품 품질 테스트, 준공 현장 테스트만 이뤄진다. 품질 테스트는 인조잔디와 그 위에 뿌려지는 모래, 충전재를 합해 깊이 55㎜ 제품에 대해 진행된다. 충격흡수성 50%를 넘는 국내 제조업체는 50여 곳이다. 문제는 현장 테스트다. 일반적으로 현장 테스트는 준공 당시 한 번만 진행된다. 이후 정기 점검을 받는 구장은 거의 없다.
공양표 KCL 충청본부 본부장, 양인규 KCL 책임연구원
국내에서 인조잔디는 2006년부터 보급되기 시작했다. 당시는 인조잔디를 수입해 깔았다. 정부는 2010년 인조잔디, 2011년 육상트랙에 대한 KS 기준을 마련했다. 2016년 국회에서 폐타이어 부스러기 충전재 유해성 논란이 크게 다뤄진 뒤 내구성과 함께 유해성 기준이 상당히 높아졌다. 인조잔디 공사는 조달 입찰로 진행된다. 공사비는 토목공사비를 빼고 4억5000만원~5억원이다. 거의 모든 지자체가 시공만 신경을 쓸 뿐 사후 관리는 안중에 없다. KCL 양인규 책임연구원은 “인조잔디 자체가 쓰러져 엉키고 마모되기 전까지는 유실된 충전재를 효과적으로 채워줘도 충격흡수율을 어느 정도 유지할 수 있는데 그것조차 제대로 하지 않는 곳이 태반”이라고 말했다.
인조잔디 성능을 높게 유지하려면 입찰방식부터 달라져야 한다. 시공뿐만 아니라 향후 점검과 유지, 보수를 의무화하는 조항까지 넣어야 한다. KS 기준보다는 시설을 사용하는 종목단체 인증 기준이 우선시돼야 한다. 공 본부장은 “국내 인조잔디는 까는 시장만 있지 고치는 시장이 없다”며 “그 피해를 선수가 고스란히 보는 셈”이라고 말했다. 국내 최상급 인조잔디 제조업체는 3곳이다. 코오롱이 FIFA 인증을, 대원그린과 케이앤비준우는 K리그 인증을 받았다. K리그 인증 1호 인조잔디구장은 GS챔피언스파크(경기도 구리)에 있다. 양 연구원은 “국내 인조잔디 품질이 좋은 편이라 사후 관리만 철저히 하면 내구성과 성능을 양호하게 유지할 수 있다”며 “관리 주체 설정, 정기 점검 및 수리 법적 의무화가 시급하다”고 말했다. KCL은 FIFA 인증 기관 등록 절차를 밟는다. 2020년 코로나19로 인해 취소된 등록 절차를 다시 진행하는 것이다. 아시아에서 FIFA 인증을 받은 시험 기관은 아직 없다.
육상트랙도 문제가 많다. 트랙은 충격흡수성과 수직방향변형을 중요하게 다룬다. 수직방향변형은 트랙이 순간적으로 눌리는 정도다. 국제기준은 충격흡수성 35~50%, 수직방향변형 0.6~2.5㎜다. 육상 종목 특성상 충격흡수성은 35%에 가까울수록, 수직방향변형은 2.5㎜에 가까울수록 좋은 제품이다. 수직방향변형에 대한 KS 기준은 0.6~3.5㎜다. 국제수준(2.5㎜)에 맞출 필요가 없으니 기술 개발도 안 한다. 양 연구원은 “국내 트랙은 초기에는 상대적으로 푹신하지만, 이후에는 국제 수준 이하로 너무 딱딱해진다”며 “기록 저하, 부상 증가가 초래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한국체육시설관리협회 안을섭 회장(대림대 교수)은 “선수들의 건강과 생명을 지키고 경기력을 끌어올리기 위해 체육시설에 대한 정기 점검과 수리, 보수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며 ”전국 체육시설에 이같은 시스템이 만들어진다면 양질의 일자리도 다수 창출될 수 있다“고 말했다.
김세훈 기자 shkim@kyunghyang.com